총장과 남편 사이
- 작성자최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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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준비해 오던 아내가 던진 말,
자신은 총장이 아니라 남편으로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목사인 아들이
남의 어머니가 아프면 병상에 찾아가고 기도해주는데
정작 자기 어머니가 아픈데, 갈수 없었던 기억과
명절에도 새벽기도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했던 시간이,
미국에서 한 해 한 번씩 방문하는 아들의 얼굴보다는
등을 봐야 했던 내 어머니가 아내의 말 속에서 보였습니다.
총장이 되고
남편 되기를 포기한 건 아닌데
남편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순간들입니다.
아픈 아내를 집에 두고
포천에 올라가 열흘이란 긴 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밀알의 시간에는
아내를 밀알 삼아 지냈고
처음 해 보는 직장인의 길에서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살아가다가
맞이 하는 휴식 시간에도
머리는 온통 총장의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목회에서는 나름 균형이라는 게 있었고
그게 자부심이었는데 총장의 길에서는
깨어진 균형 속에 선 저를 봅니다.
면장도 알아야 하니까 배워야 하고 읽어야 하는
그 시간이 새로운 영감의 빛으로 다가서기 보다는
만학도의 새로 배워야 하는 언어의 문자로 힘겹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한 주간 같은 도시락을 반복해서 먹어야 하는 총장 리셉션은
어릴 때부터 같은 반찬을 두 번 먹지 않았던 제 습관에 대한 도전이 되고
왜 학과마다 다른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권면과 설교 사이의 경계가 희미했는데
이젠 그 메시지 속에 둘의 경계가 하나가 되는 걸 느낍니다
내일 이사 날인데
총장 남편은 새벽부터
서울 변방에서 또 다른 쪽의 변방에 자리 잡은 대학 총장 기도회에 갑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남편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그러니 기다려 달라고…
몇 년만…